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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도쿄타워 (에쿠니 가오리 )


2005년 10월에 초판이 나온 , 우리나라에서 인기좋은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을 나는 이제서야 읽었다.
뒷북도 한참 뒷북이다. 유행이 휩쓸고 지나가 이제는
"난 에쿠니 가오리를 좋아해" 라고 하면 식상해보일정도니까 ..
나는 남들이 다 좋다고 하는 건 왠지 싫어서 외면한다. 그래서 '웨하스 의자'도 안읽었고
'반짝반짝 빛나는' 도 얼마전에 읽었다.

도쿄타워는, 한마디로 별로였다. 중간까지는 딱 "별로"였다.
친구인 두 젊은 남자가, 각각 다른 방식으로 연상의 여자들을 사랑하는 이야기이다.
이건 이미 들어서 알고있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을 기대했다. 
등장인물들이 어떤 생각과 상황때문에 충분히 저럴 수 있다, 고 
독자가 끄덕끄덕 하게 만들기를 바랬다. 그건 꼭 논리적 이유일 필요는 없다..

그런데 도쿄타워는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다. 등장인물중 누군가에 나를 대입시키게 되지도 않는다. 
소설 속에서는 모든 일이 순조롭고 심심하다. 일상은 조용하고 등장인물들은 선문답같은 대화를 한다. 
실제는 그렇지않다. 진짜로 우리는 말은 건조하게 하지만 그 안에선 감정이 끓고, 끊임없이 생각한다.

이상하다고, 느끼면서 지금의 일본은 이런 사회인가? 생각했다. 부모자식 뿐 아니라 애인 사이에도 
어딘지 모르게 거리를 두고 사회 뿐 아니라 자기인생에서도 한발 물러나 있는 것 같다 ..    
에쿠니 가오리의 그런점에 사람들은 열광한 걸까
굉장히 사(私)적이고, 관조적인 분위기에.. 한국사회도 그런식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으니까 .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 소위 인기작가의 역량? 저력? 이라는게 발휘되었다. 
여전히 큰 의미없고 어쩐지 뭔가 생략된 듯 해 실제같지 않은 대화가 이어지고, 
격렬함이라고는 요만큼도 없는 듯한 일상을 반복적으로 묘사하지만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커플들의 숙명-상대에게 진심일 때의 슬픔- 을 엿볼수 있었기 때문이다.  

(본문 중)
"좋았겠다, 토오루는 그 시절의 코우지 곁에 있을 수 있어서." 토오루는 대답이 막혔다.
"좋았겠다" 유리는 또 한번 말했다.
..

"좀 더 일찍 태어나 주었다면 좋았을 텐데." 잔을 흔들어, 와인에 잔물결을 일으키면서 시후미가 말했다.
"나한테 이 곡이 아주 특별했던 시절, 토오루도 함께 이것을 들어주었다면 좋았을 텐데."
..

"스무살 무렵에는 뭘 했어요?"
"잊어버렸어. 학생이었지. .. 그다지 성실한 학생은 아니었어. 책만 읽었지. 지금보다 훨씬 많이, 마셨어."
"애인은 있었어요?"
시후미는 시원스럽게 응, 하고 대답한다. 그리고 토오루의 귀에는 즐겁게까지 들리는 목소리로,
"그거알아?" 라고 했다.
"그거 알아? '하지만' 난 너의 미래를 질투하고 있어."
"왜 그런말을 해요? 그렇다면 쭉 같이 있어주면 되잖아요."
..

모두가 알지만 매끄럽게 설명하지 못하는 것을 글로 가슴울리게 표현해주는 작가라는 직업이 참 멋지다.
그러고보면 저런 슬픔은 비단 20살쯤 차이나는 커플에만 있는것도 아닌거같다.
내가 모르는 그사람의 학창시절, 언젠가 헤어지고 나없이 살아갈 그사람의 모습
인력으로 어쩔수없는 거지만 그래서 더 슬프다
그나마 비슷한 연배끼리는 서로에게 같은 정도의 아쉬움을 가지고 있을테니 그걸로 위안을 삼는다.

그리고 또하나, "함께 사는것과 함께 살아가는 것." 에 대한 이야기에 대해서는
생각할수록 막연히 '결혼제도라는건 위험하다' 고 느껴졌다. 시후미가 남편과 결혼할 당시, 애정이 없는데 
억지로 했다던가 라고는 결코 생각할 수 없다. 그런데 함께 살다보면 그렇게 되는거다 .. 
서로 함께 살아가고자 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나는 이제 십대가 아니라 외로운게 싫다 혼자되는게 싫다 하면서 
남편은 그자리에 필요한 사람이다 . 하지만 함께 살아가고 싶은 사람은 아니라니 ..

"..그곳에서 샌드위치를 먹으며 토오루는 시후미가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여기있는 어느 누구보다도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요즘 들어 내내 그렇지만,
오늘도 빛이 날만큼 행복했다. 시후미의 말을 빌리면 그것은,
'함께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기 때문'이었다. "


인간은 정말 변덕스럽고 까다롭다고, 그래도 나는 권태로움 없이 마냥 행복하고 말겠다고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