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읽고 나쓰메 소세키가 궁금해져서, 그의 대표작들을 검색해보았다.
그중에 좀 쉽고 재밌어보이는 '도련님'으로 낙찰-
그 덕분인지 이 책은 어린이용 도서로 많이 나와있었다 ㅡ ㅡ
어른용 서가에서 골랐는데도 책에 그림이 있었다 .
1.나는 어째서 제목이 도련님인가, 궁금했다.
곱게 자란 귀한집 도련님의 말랑한 이야기인가? 했는데..
실제로는 '곱게 자라진 않았지만 철없던 도련님이 세상물정을 알아가는 이야기' 였다.
주인공 '도련님'은 어릴때부터 덤벙거리고 장난을 좋아해, 부모에게 별 사랑을 받지못했고
그나마도 두분다 일찍 돌아가셨다. 단 집에 있던 하녀 '기요'할멈만은 이 천방지축을 매우 귀여워해서
용돈도 쥐어주고 , 무슨말을 해도 칭찬을 해주고, 나중에도 자기를 데리고 살아달라고 한다.
(아.. 나는 어쩐지 눈물도 조금 날 것 같았는데 이 천방지축 녀석은
기요할멈의 무조건적 사랑을 알면서도 별로 고마워하지는 않는듯 했다. )
그러다가 별 생각없이 구한 직장이 지방 중학교 선생이어서 기요할멈과 떨어져 부임하게 된다.
그곳에서의 학생들과의 기싸움, 선생들 사이의 정치, 동네사람들과의 사회생활을 겪으면서
솔직하고 정의롭지만 세상물정 모르고 똘똘하지 못한 도련님이 조금은 성장하는 이야기다.
처음엔 주인공 화자가 눈치도 없고 똘똘하지 못해서 읽는데 답답했다.
등장인물 중 누가 옳고 그른지를 읽는 나도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단지 곤란한 것은 어느 쪽이 나쁜 놈인가 하는 점이 분명치 않다는 것이다. 나 같은 단순한 인간에게는 백인지 흑인지 분간을 해 주지 않으면, 어느 편을 들어야하는지 모른다." 고 써놓는다
에헤~ 댁이 분간못하면 읽는 나는 어찌 분간한단말이오..
그러나 이건 큰 문제는 아닌것이, 읽다보면 자연히 판단이 서기때문이다. 사실 실제 우리생활도
이 상황과 비슷- 누가 옳고 그른지 작은 일에도 헷갈려 어느편에 서야할지 모르는- 하기 때문에
이점에서 나는 또 나쓰메 소세키에 공감했다 . .
2.일본소설을 읽으면서 등장인물의 이름에 헷갈려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도련님은 그점에선
아주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나는 얼마전 '모방범'이라는 일본소설을 읽다가 풀네임으로 언급되는 등장인물들의 이름
(가우라 마이, 기시다 아케미, 히로미, 구리하시, 오가와, 미타카, 마리코, 마치코 등 ㅡㅡ)에 질려서
결국 수첩에 이름과 특징을 적어가며 겨우 1권을 끝냈다. .
도련님에서는 새로 부임한 학교 선생들의 특징에 따라 도련님 마음대로 별명을 붙여놓고 그걸로
지칭하기 때문에 분간도 쉽고 인물 특징도 확 느낌이 온다.
교장은 너구리, 교감은 빨간셔츠, 미술선생은 알랑쇠, 수학주임은 멧돼지, 영어선생은 끝물선생 등
이걸로도 좀 웃긴다.. 그리고 마을 최고 미녀 별명은 마돈나.. ㅎㅎ
3.이 책은 1906년 발표된 책이라고 한다. 어마어마하다. 벌써 100년도 더 된 책이다. 그런데도 참
공감이 간다. 특히, 선생이란 직업에 대한 사회적 요구와, 그에 모순되는 현실 같은것.
책 속에서 도련님은 타지에서 혼자 자취하는 입장으로, 경단가게와 우동가게 등을 드나들며
먹는 즐거움을 추구하다가 교직원회의에서 한소리 듣게된다.
"학생의 풍기는 반드시 교사의 감화로써 바로잡아야 합니다. 우선 첫 단계로 선생님들은 가급적
음식점에 출입하지 않도록 하기를 바랍니다.. 혼자서 그다지 점잖지 못한 장소에 가는 행위는 삼가하기를 바랍니다. 예를 들면 국수집이라든가 경단집 같은 곳.."
"원래 중학교 선생의 직분은 사회 지도층에 해당하므로 단지 물질적인 쾌락만을 추구해서는 안 되는 자리입니다. 그런 경향으로 빠져들어 가면 알지 못하는 사이에 품성에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러나 인간이기 때문에 뭔가 낙이 없으면 이런 좁은 시골에서 잘 지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낚시질을 한다든지, 문학서적을 읽는다든지, 또 신체시나 하이쿠를 짓는다든지, 무엇이든 고상한 정신적 오락을 찾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당시 교사는 어땠는지 몰라도, 책에 나오는 대로라면 그때도 교사는
그다지 권위있거나 존경받지 않았다..
게다가 도련님이 교사가 되는 과정을 봐도 고등교육을 받고 아무생각없이 빈둥대던 사람을
선생이 추천해서 교사가 된 것 뿐이다.
사회적 지도층? 인격적으로 성숙한 인간? 허허..
책속에서 도련님은 앞에서는 저런 가소로운 말을 하고 뒤에서는 기생과 여관에 묵는 교사들의 행태에 분개한다.
100년이 지난 지금 세상은 많이도 변했는데 왜 이런점에선 하나도 안변했을까?
교사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지금도 저런 식으로 교사에게 인격적 고매함이나 학생에 대한 희생정신,
사회적 지도층으로서의 책임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나는 언제까지 저런 것에 호소할 것이
아니라, 그가 제공하는 서비스와 그에 걸맞는 임금으로-또는 복지 향상으로
"근무태도"와 "직업능률"을 올릴수 있게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선생님들도 교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일 뿐이고, 교사가 될 때 인격 검사를 하는것도 아니다.
도덕적으로 완전무결한 인간이기를 요구하니까 오히려 뒤로 곪는거 아닌가 ?
여하튼 알랑쇠와 빨간셔츠의 행태를 보자면 '인간은 셋만 모이면 정치를 한다' 는 게 실감이 난다..
그게 학교건 어디건 상관없다 ㅡ ㅡ
4.좀 심각한 내용이 된 것 같지만 '도련님'은 전혀 심각한 내용이 아니다.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인간 사이의 정치도 겪고, 기요 할멈의 고마움도 깨달아 가는 도련님의 모습을, 도련님 특유의 욱하는 말투로 읽다보면 금새 책이 끝난다.
가벼운 책을 읽고싶을때 딱이다. 100년이 지나서도 사랑받는 책에는 다-이유가 있나보다.